여든이 가까워서도 나는 논에 나갔다.
넘어진 해의 벼는 잘 됐다. 나는 잘 못 됐다. 허리가 아팠고, 아들은 이제 그만 나오라고 했다. 나는 내년까지만 하자고 했다. 그 내년이 올해인지 작년인지 헷갈린다.
흙 냄새는 아직 좋다. 좋다는 말을 아들에게는 고집으로 들렸을 것이다. 미안하다. 나는 일을 멈추면 사람이 멈춘다고 믿었다. 반은 틀렸다. 멈춰도 밥은 먹는다.
논을 팔아도 된다. 팔아서 너희 애 학원비에 보태라. 나는 벼보다 너희가 크는 걸 더 보고 싶었다. 다 보지 못해도, 방향은 그쪽이었다.
계약서 여백에 나는 생활비를 적었다.
월세, 가스, 폰, 약. 약이 점점 위로 올라왔다. 숫자가 인생을 설명하는 것 같아서 싫었지만, 적지 않으면 불안했다.
옆 방 학생은 밤마다 라면을 끓였다. 나는 벽을 두드리고 싶은 날도 있었다. 안 두드렸다. 나도 그 나이엔 늦게 먹었다. 어느 날 학생이 이사 가며 휴지를 한 묶음 두고 갔다. 받을 이유가 없는 호의였다.
집이 작아도 나는 여기서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게 내 자랑의 전부다. 다음 세입자가 계약서 여백을 보면, 내 숫자를 지우고 자기 숫자를 적어도 된다. 인생은 덮어쓰기가 된다.
나는 고기를 많이 자랑하지 않는다.
바다에 나가면 자랑이 먼저 가라앉는 날이 있다. 빈 그물로 돌아오면 아내는 국부터 데웠다. 잘 잡았다, 못 잡았다를 그날 저녁의 표정으로 정하지 않았다.
아들은 배를 물려받지 않았다. 나는 서운한 티를 조금 냈다. 지금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등은 하나면 충분하다. 그 등이 내 것이었으면 됐지, 아들의 것까지 빌릴 필요는 없었다.
바다를 무서워하지 마라는 말은 안 하겠다. 무서워도 된다. 다만 빈 그물 날의 국은 꼭 먹어라. 내가 배운 생존은 그 한 그릇이었다.
선생님으로 일한 지 삼십 년이다.
어느 해, 한 아이가 수업 후에 남겠다고 했다. 나는 다음 반이 들어온다며 뒷문을 닫았다. 아이는 고개만 끄덕이고 복도로 나갔다. 그 아이가 나중에 학교를 쉬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문을 닫은 손부터 기억났다.
모든 쉬는 아이가 내 문 때문은 아니다. 그래도 내 문은 너무 빨랐다.
아직 교단에 있는 사람에게 남긴다. 다음 반이 들어와도, 일 분은 복도에 서 있어라. 그 일 분에 어떤 애는 문장 하나를 건넨다. 나는 그 문장을 못 받았다.
밤늦게 내가 버스를 기다리면 당신이 전화했다.
택시 타라고, 아끼지 말라고. 나는 기사 얼굴을 보는 게 어색해서 버스를 고집했다. 당신은 한숨을 쉬고 끊지 않았다. 도착할 때까지 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배터리가 닳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나는 그 전화를 과보호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은 안다. 당신은 내가 골목에서 사라질까 봐 목소리를 보내 둔 것이다.
이제 내가 말한다. 당신은 밤길을 혼자 걷지 마. 택시비가 아까우면 내가 남긴 봉투를 써라. 지갑 안쪽, 고무줄로 묶어 둔 것. 그건 비상금이 아니라 당신의 밤을 위한 돈이다.
여보.
내가 출장을 핑계로 집을 비운 날이 많다. 당신은 애들 숙제를 보다가 설거지를 했고, 나는 호텔에서 보고서를 고쳤다. 보고서는 다음 달에 잊혔다. 당신의 허리는 잊히지 않았다.
애들 앞에서 우리가 다툰 적도 있다. 나는 이겼다고 착각했다. 당신은 상을 치우며 진 사람처럼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 승리가 아니라는 걸 나는 한참 뒤에 알았다.
애들한테는 엄마 흉을 보지 마. 이미 안 보고 있지. 나는 당신 흉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 입을 지금 다문다. 당신은 우리 집을 혼자 여러 번 구했다.
엄마.
산소가 왼쪽이었는지 오른쪽이었는지, 갈 때마다 한 번 틀린다. 아버지는 나무를 기준으로 찾으라고 했는데, 그 나무가 베어지고 나서 나는 더 헤맨다.
벌초를 핑계로 형제들이 모인다. 모이면 옛 얘기를 하다 말다 한다. 엄마가 끓이던 북엇국 얘기가 나오면 모두가 잠깐 조용해진다. 그 조용함이 우리 식의 그리움이다.
보고 싶다, 는 말이 너무 흔해서 적기 부끄럽다. 그래도 적는다. 엄마 손은 차가웠고, 국은 뜨거웠다. 나는 그 온도 차이 속에서 자랐다.
당신은 아침 라디오를 같은 채널에 고정해 두었다.
내가 돌리면 다시 돌려놓았다. 잔소리 없이, 그냥 손으로. 당신이 가고 나서 나는 그 채널을 바꾸지 않았다. 진행자가 바뀌어도 숫자는 그대로다.
당신 옷은 대부분 정리했다. 라디오는 정리의 목록에 넣지 못했다. 소리가 나면 당신이 부엌에 있는 것 같아서, 어떤 날은 끄고 어떤 날은 켠다. 기준은 없다. 그날의 용기만 있다.
친구들은 여행을 가라 한다. 갔다. 호텔에서 라디오를 찾다가 스스로 웃었다. 당신은 그런 나를 보고 또 채널을 맞췄을 것이다. 나는 그 손을 기억하겠다.
쌍둥이를 낳고 나는 밤을 둘로 나눴다.
한 명이 잠들면 다른 한 명이 깼다. 나는 누구 이름을 부르는지 헷갈려서 둘 다 불렀다. 너희 아버지는 새벽 젖병을 데우다 싱크대에 기대 존 적이 있다. 나는 그 모습을 사진 찍지 않았다. 찍으면 네가, 아니 우리가 더 초라해 보일까 봐.
지금 너희는 서로 다른 도시를 말한다. 하나는 바다, 하나는 산. 나는 둘 다 가지 말라고 하지 않겠다. 대신 생일에는 서로 전화는 해라. 같은 날 태어난 게 짐이 되지 않게, 안부가 되게.
엄마는 너희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해 왔다. 사실은 날마다 조금 달랐다. 아픈 쪽, 말없는 쪽에 마음이 더 갔다. 그 불공평을 이제 인정한다. 그래도 합은 둘을 향해 있었다.
너는 우리 집에 늦게 왔다.
사람들이 나이를 물으면 나는 웃으며 넘어갔다. 사실 계산은 하고 있었다. 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내가 어디까지 옆에 있을까. 그 계산이 사랑인지 불안인지 아직도 구분이 안 된다.
네 숙제를 봐 주다가 내가 먼저 졸았다. 너는 내 안경을 접어 옆에 두었다. 어린애의 손버릇이 아니었다. 이미 사람을 챙기는 손이었다.
조급해하지 마. 늦게 시작했다는 말로 너를 재촉하는 어른이 있으면, 그 말은 흘려라. 네 시작은 네 시계다. 나는 그 시계가 정확하지 않아도 좋다. 가기만 하면 된다.
가족들이 케이크를 사 왔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지 않았는데, 촛불을 끄면 소원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피했다. 소원을 말하면 현실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초를 네가 끄라고 했다.
너는 물었다. 아빠 소원은 뭐냐고. 나는 너희 건강이라고 했다. 그건 반만 맞다. 나머지 반은, 내가 이 상을 내년에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반은 삼켰다.
삼킨 말을 여기 올린다. 내년이 없으면, 올해의 케이크가 충분한 생일이다.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거짓이었다. 크림은 남기지 말고 먹어라.
여보, 마지막 문장은 실용적이어도 된다.
현관 센서등이 깜빡인다. 전구는 신발장 위 상자 안에 있다. 내가 사 두고 미룬 것이다. 네가 의자에 올라가지 말고, 조카에게 부탁해라. 그 애는 키가 크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당신을 만나서 집이 생겼다. 집이라는 게 벽이 아니라, 누가 돌아오느냐는 뜻이라는 걸 늦게 배웠다. 당신이 돌아오는 쪽이 곧 집이었다.
불은 갈아 두고, 너무 어둡게 살지는 마. 나는 당신이 환한 얼굴인 게 좋았다. 그 얼굴을 내가 먼저 떠나서 못 보는 것이 섭섭하다. 섭섭해도 당신은 밖으로 나가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