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ast Talk

행복했던 추억

가족, 사랑, 친구, 여행, 어린 시절처럼 좋았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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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마루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소풍 사진 속이 아니었다. 여름 마루에서 수박을 깎으며 씨가 발등에 튀던 때였다. 아무도 훌륭한 말을 하지 않았다. 부채 소리와 웃음만 있었다. 나는 그 평범함을 당시에는 기념하지 못했다. 행복은 나중에 이름이 붙는 법이니까. 그 마루의 그늘을 아직 몸에 갖고 있다. 무더운 날이면 다시 그 그늘이 먼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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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가 켜지던 아침

일요일 아침의 라디오는 늘 같은 진행자였다. 어머니는 국을 끓이고, 나는 이불 속에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특별한 사건은 없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행복했던 추억에게 필요한 것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반복이었다. 그 아침의 냄새를 나는 아직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찾으면 또 이어서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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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골목

우리는 특별한 여행을 많이 하지 못했다. 대신 같은 골목을 수백 번 걸었다. 당신이 내 보폭에 맞추느라 가끔 느려지던 것,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나중에야 불렀다. 가로등 아래 그림자가 하나로 겹치던 밤이 있다. 사진은 없다. 그래도 그 밤이 내 기억에서는 가장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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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부엌

명절 부엌은 늘 좁고 시끄러웠다. 전을 부치는 소리 사이로 누군가의 근황이 반쯤만 들렸다. 다툼도 있었다. 상 차리는 순서를 두고 언성이 높아지던 해. 그래도 밤이 되면 같은 이불을 찾고 있었다. 가족의 행복은 완벽한 화목이 아니라, 싸우고도 자리를 지키는 일에 가까웠다. 그 북적임이 그립다. 조용한 집이 편할 때도 있지만, 행복했던 추억은 대개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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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전거

어린 나는 아버지 자전거 앞자리에 앉았다. 바람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아버지는 계속 앞만 보라고 했다. 목적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장이었는지 학교였는지. 남는 것은 등의 넓이와, 브레이크를 잡기 전에 속도를 낮추던 조심이다. 아버지는 다정한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 조심이 말이었다는 걸, 내가 누군가를 태우고 나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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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처음 걸었던 날

네가 처음 걸었던 날은 기록이 서툴다. 나는 카메라를 찾느라 네 두 번째 걸음을 놓쳤다. 그래도 첫걸음은 봤다. 비틀거리며 내 무릎으로 오던 거리. 그 거리가 이렇게 짧은 줄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네가 문을 열고 나가는 거리가 그보다 멀다. 행복했던 추억을 남긴다. 너는 나에게 걸어와 주었다. 그것만으로 내 하루는 여러 번 구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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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자율의 빵

시험이 끝난 밤, 우리는 학교 담 아래에서 따뜻한 빵을 나눠 먹었다. 성적은 금방 잊혔고 빵의 김은 아직 기억난다. 우정은 거창한 의리 이전에, 배고픈 시간을 같이 견디는 일이었다. 너는 큰 쪽을 나에게 밀었다. 나는 티를 내며 사양하다가 결국 받았다. 그 밤의 우리를 나는 가장 정직한 청춘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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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정류장

우산이 하나였다. 너는 말없이 내 쪽으로 기울였고, 네 어깨는 젖었다. 감사는 그날 바로 말로 하지 못했다. 젖은 소매를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같이 올라왔다. 지금 적으면 늦지만, 추억은 늦어도 온도가 남는다. 그 정류장에서 나는 보호받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오래 재산처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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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던 이웃

이사 오던 날 엘리베이터를 잡아 준 이웃에게. 이름을 제대로 묻지 못한 채 계절이 바뀌었다. 그 작은 도움이 짐보다 무거웠다. 나는 유언처럼 남긴다. 받은 친절은 같은 크기로 다음 사람에게 건네라고. 추억은 그렇게 이어질 때 행복했던 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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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전의 바다

이별이 정해진 여름에도 바다는 아름다웠다. 우리는 사진을 많이 찍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행복과 슬픔이 같은 오후에 있었다. 발목에 닿는 물이 차갑지 않아서, 나는 이 기억을 불행으로 분류하지 않기로 했다. 떠나는 사람도 남기는 사람도, 그 바다에서는 잠깐 같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