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ast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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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에 남기고 싶은 말을 조용히 읽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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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네 속도대로 가

딸아. 엄마는 네 성적표보다 네 신발이 벗겨진 채로 현관에 놓여 있던 걸 더 오래 기억한다. 학교 다녀오면 말도 없이 냉장고를 열고, 물부터 마시던 너. 그 소리가 집이었다. 나는 너를 내 후회를 고치는 도구로 쓰고 싶지 않다. 내가 못 간 길을 네가 대신 걸을 필요 없다. 남들이 보기에 느려 보여도, 네가 숨이 차지 않는 속도면 된다. 결혼하든 안 하든, 아이를 갖든 안 갖든, 그건 네 집의 일이다. 엄마 집은 네가 지치면 오는 곳으로만 남아 있으면 좋겠다. 비밀번호는 네 생일 뒤 네 자리다. 잊어버리면 동생한테 물어봐. 그 애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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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가던 날, 나는 손을 흔들지 못했다

아들아. 역에서 네가 창가에 앉았을 때, 나는 손을 들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서 있었다. 네가 먼저 가볍게 흔들었고, 나는 한 박자 늦게 따라 했다. 그 한 박자가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아빠는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붙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대신 네 방 불을 끄지 말고 자라고 잔소리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걱정이었는데, 나는 그 둘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너는 이미 네 밥을 벌어 먹고 있다. 누구 눈치 보느라 네 휴가를 반납하지 마. 집에 오면 반찬은 늘 있듯이, 아빠 마음도 늘 네 쪽에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그래도 이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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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치마가 아직 눈에 남아요

엄마. 내가 이사 가던 날, 엄마는 김치 통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들고 나왔다. 앞치마에 국물이 묻어 있었다. 나는 무겁다고, 들어가라고 말했다. 엄마는 웃으면서 다음 주에 또 보내 주겠다고 했다. 그 다음 주가 이렇게 멀어질 줄은 그때 몰랐다. 용돈을 돌려드린 적도 있다. 독립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서운한 티를 안 내고, 그냥 봉투를 도로 가방에 넣었다. 그 손이 야위어 보였다. 나는 그걸 보고도 바쁘다는 말을 먼저 했다. 이제야 말한다. 내가 먹은 밥의 대부분은 엄마 것이었다. 고맙다. 이 말은 늦었지만 비어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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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구두는 닦지 않아도 됩니다

아버지. 토요일마다 현관에서 구두를 닦으시던 게 생각난다. 나는 그 옆을 지나가며 신문만 집었다. 한번은 붓을 같이 잡아 볼까 하다가, 민망해서 방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 말은 적으셨다. 대신 내가 밤늦게 오면 거실 스탠드를 켜 두셨다. 잔소리 대신 불빛이었다. 나는 그 불을 당연하게 여겼다. 지금 적는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구두를 매일 닦지 않으셔도 된다. 이제는 아버지가 편한 신발을 신으셨으면 한다. 사랑합니다. 입 밖으로 잘 안 나오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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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답장 안 해도 된다

너한테 긴 문자는 안 보내는 사이였지. 내가 회사를 그만두던 해, 너는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그냥 회사 앞 골목에서 김밥이랑 커피를 사 들고 왔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나는 그걸 불평하지 않았다. 같이 먹었다. 그게 다였다. 우정이라고 이름 붙이면 좀 거창하다. 그냥 너는 내가 무너져도 질문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제때 고맙다고 하지 못했다. 이 글에 답장은 하지 마. 네 사람들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 내가 너한테 받은 방식 그대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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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에 적혀 있던 너

우리는 사귀어 본 적이 없다. 같은 반이었고, 너는 창가, 나는 복도 쪽이었다. 네 이름표의 글씨가 유난히 반듯했던 것만 기억난다. 소풍 때 네가 김밥을 떨어뜨려서 내가 내 몫을 반 건넸다. 너는 고맙다는 말 대신 다음에 네가 산다고 했다. 그 다음은 오지 않았다. 졸업하고 너는 다른 도시로 갔다. 나는 네 소식을 일부러 찾지 않았다. 찾으면 내 쪽이 커질 것 같아서였다. 지금 와서 사랑을 고백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때의 내가 너를 조용히 좋아했다는 걸 어디에든 남겨 두고 싶었다. 네가 이 글을 볼 일은 없어도 된다. 내 쪽이 먼저 놓아 주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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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베개는 아직 그 자리에

당신이 먼저 가고 나서, 나는 베개를 치우지 못했다. 사람들은 방을 정리하라고 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것도 안 했다. 당신의 머릿결이 남아 있던 그 쪽을 내가 베면, 당신이 아주 가 버린 것 같아서였다. 아침에는 아직도 두 잔을 준비할 뻔한다. 컵을 하나 도로 넣으면서 혼자 웃긴 하다. 슬퍼서 웃는 건지, 웃어서 덜 슬픈 건지 모르겠다. 당신은 내가 짠 음식을 좋아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간을 내 쪽에 맞췄다. 그 투덜거림이 그리워.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는 말은 아직 못 듣겠다. 다만 당신의 자리는, 내가 숨 쉴 수 있을 만큼만 비워 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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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신발을 아직 못 버렸어

아가. 네 신발을 버릴 수가 없다. 사이즈가 작아서 누구 발에도 안 맞는데, 상자 안에 넣어 두었다. 먼지 앉을까 봐 뚜껑을 덮어 둔 게 벌써 여러 계절이다. 너는 말이 늦었다. 나는 그걸 걱정했고, 너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정확히 불렀다. 그 하루를 나는 사진보다 귀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했다. 시간은 해결하지 않았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는 법을 다시 가르쳐 줬을 뿐이다. 엄마는, 아니 나는, 너를 원망한 적이 없다. 네가 아팠던 날을 내가 대신할 수 없었던 것만 미안하다. 오늘도 네 이름을 속으로 한 번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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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그 시계는 네가 가져

형. 아버지 시계 때문에 우리가 말다툼한 거, 나는 아직 그 침묵이 불편하다. 시계는 네가 가져. 나는 시간을 보는 버릇이 네 쪽보다 덜하다. 너는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늘 그것을 찼지. 우리는 어릴 때 이불을 같이 덮었다. 형은 발차기를 했고, 나는 베개를 끌어안았다. 커서는 명절에만 만났고, 만나면 정치 얘기부터 해서 어머니가 상을 치우기 전에 분위기가 상했다. 이제 와서 화해의 연설은 안 한다. 그냥 시계는 네 것이고, 나는 형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문장만 남긴다. 명절에 애들한테 큰소리부터 내지 마. 우리가 그거 하나 때문에 밥을 식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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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던 손을 오늘 내려놓는다

너를 오래 미워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너는 내 말을 사람들 앞에서 작게 만들었고, 나는 그 자리를 몇 년이나 되새겼다. 되새길수록 내 방이 너의 창고가 됐다. 용서한다는 말을 너에게 선물처럼 주고 싶지는 않다. 그건 아직도 어렵다. 다만 벌을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기억은 남는다. 복수까지 남기면 내 남은 날이 너무 좁아진다. 너도 어디선가 그 일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든 말든, 나는 오늘 내 쪽에서 문을 조금 열었다. 들어오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나가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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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물건보다 너희 밥을 먼저

남겨진 사람들에게. 내 옷은 좋은 데 보내지 않아도 된다. 입을 사람 있으면 주고, 없으면 버려라. 사진을 전부 액자에 넣을 필요도 없다. 한 장만, 내가 웃고 있는 걸로 고르면 된다. 웃지 않은 사진은 애써서 찾지 마. 유산 얘기가 나오면 목소리를 낮춰라. 집 한 칸 때문에 형제 사이가 갈라지는 걸 나는 옆에서 여러 번 봤다. 그 집을 팔아 밥을 사 먹어도 나는 서운하지 않다. 장례를 길게 하지 마. 끝나고 배고프면 꼭 먹어. 나를 보내는 일이 너희를 굶기는 일이 되면 안 된다. 서로 행복하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나는 그 식상한 부탁을 진심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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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년을 대충 세어 보니

나는 크게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공장을 다녔고, 야근을 했고, 월급날이면 봉투를 집사람 손에 먼저 건넸다. 남은 돈으로 소주 한 잔을 할 때도 있었다. 그걸 자랑이라고 쓰려는 건 아니다. 잘한 일은 적다. 애들 운동회에 간 횟수보다 못 간 횟수가 많다. 못한 날을 변명하지 않겠다. 일이 바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선순위는 내가 정한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집을 버리지는 않았다. 늦게 들어와도 그 현관으로 돌아왔다. 인생이 그 정도라면, 나는 실패만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허락한다. 뒤에 오는 사람은 나보다 회의를 하나 빼도 된다. 그 한 칸에 사람 이름을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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