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ast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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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에 남기고 싶은 말을 조용히 읽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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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그 말 취소한다

명절에 내가 한 말, 취소한다. 너는 부모님 사랑만 받고 자랐다는 그 말. 술김이었다고 하기엔 너무 또박또박했다. 우리는 방을 나눠 쓰면서도 이불은 같이 말았다. 그 손이 더 오래 기억나야 했는데, 나는 몫 얘기만 했다. 화해 이벤트를 하자는 건 아니다. 그냥 그 문장을 내가 거둔다. 너는 네 방식으로 이미 집을 챙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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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까지는 안 적을게

너를 연인이라고 부른 적은 없다. 도서관 맨 뒷줄, 너만 연필을 비스듬히 깎아 왔다. 나는 그걸 몇 학기나 봤다. 졸업하고 너는 먼저 도시를 떠났다. 나는 배웅을 핑계로 역까지 갔다가, 플랫폼 앞에서 돌아섰다. 잘 가라는 말이 목까지 와서 멈췄다. 지금 적는다. 잘 가라. 늦었고, 이름도 안 적는다. 네가 이 글을 볼 일도 없을 테니까. 그래도 나는 입 밖에 낸 셈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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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국은 아직도 내가 못끓여요

엄마. 맞춤법도 대충 적어요. 오늘은 그런 날이니까. 이사 가던 날 엄마가 김치통을 엘리베이터까지 들고 나왔던 거, 내가 무겁다고 소리친 거, 기억나요. 미안해요. 독립한 척이 급했어요. 국은 아직도 내가 못 끓여요. 간장을 먼저 넣는지 소금을 먼저 넣는지 물을 때마다 엄마한테 전화했잖아요. 이제는 레시피를 종이에 적어 냉장고에 붙여 둘게요. 맛없으면 엄마 탓은 안 할게요. 내 탓으로 먹을게요. 사랑해요. 이 단어는 평소에 잘 안 써서 어색한데, 오늘은 어색해도 적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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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다. 창은 그대로 둬

유리에 빗방울이 붙는다. 간호사가 창문 닫을까요 물었다. 나는 고개만 저었다. 집에서도 비 오면 내가 먼저 베란다를 열었다. 당신은 바닥 젖는다고 잔소리했다. 그 잔소리가 맞았다. 오늘은 맞게 해 줄게. 다만 이 창만은 열어 둔 채로 두고 싶다. 할 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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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신발을 치우지 못했어

당신이 먼저 가고 나서 현관 왼쪽 신발이 그대로다. 손님들은 정리하라고 했다. 나는 응, 하고 아무것도 안 했다. 치우면 당신이 외출에서 아주 안 돌아오는 것 같아서. 먼지는 닦는다. 그건 한다. 당신이 먼지 앉은 신을 싫어했으니까. 나는 아직 두 사람의 저녁을 생각하다가 하나를 멈춘다. 이 버릇이 언제 끝나는지 모르겠다. 끝나지 않아도 된다고 오늘은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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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야, 할아버지는 짠 바람이 좋았다

너는 아직 글을 다 못 읽을 나이일 수도 있다. 나중에 누가 읽어 주면 된다. 바닷가에서 네가 모래를 내 주머니에 넣어 줬다. 집에 와서 빨래할 때 모래가 나왔다. 나는 투덜거렸고, 너는 깔깔 웃었다. 그 투덜거림을 취소한다. 모래가 좋았다. 할아버지는 큰 선물은 못 남긴다. 짠 바람 부는 날, 창문을 조금만 열어라. 그게 내 쪽의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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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은 조용히 나가도 된다

동료들에게. 내가 빠진 뒤에 단톡방에서 나를 오래 띄우지 않아도 된다. 이모티콘 행렬은 하루면 충분하다. 야근하던 날 네가 남은 김밥 반을 밀어 준 거, 이름까지는 적지 않겠다. 그 반 쪽이 그 달의 저녁이었다. 내 자리는 빨리 채워라. 빈 책상이 오래가면 일이 쌓인다. 나는 그 정도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커피 타던 순서는 내가 좀 알았다. 그 순서만 포스트잇에 붙여 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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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두고 간 머그컵

컵 바닥에 금이 가 있다. 너는 그래도 그 컵만 썼다. 티백을 두 개 넣는 버릇 때문에 내가 늘 잔소리했다. 지금 생각하면 잔소리가 아니라 같이 사는 표시였다. 네가 먼저 떠난 뒤 나는 그 컵을 싱크대 뒤쪽에 숨겼다. 보다가 말이 막혀서. 오늘은 다시 앞으로 꺼내 둔다. 쓰지는 않을 거다. 그냥 보이게만. 보고 싶다를 예쁘게 쓰고 싶지 않다. 그냥 컵이 있다. 네가 없다. 그 차이가 하루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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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일에 내가 늦었다

케이크 초를 네가 먼저 껐다.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박수를 맞췄다. 늦었다고 말하기 부끄러워서 박수가 컸다. 너는 알았을 거다. 아이는 그 박수의 크기를 안다. 선물은 다음 날 사 왔다. 날짜가 지난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나는 그걸 포장지만 바꿔 내밀었다. 미안하다. 생일은 네가 주인공이어야 했는데, 나는 내 지각을 가리느라 네 얼굴을 제대로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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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다가 눈물이 글자를 번지게 한다

지우려고 했는데 번진 채로 두겠다. 예쁜 문장으로 고치면 오늘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당신이 내 이마에 손 올리던 버릇, 열 있는 날만 그런 줄 알았는데 멀쩡한 날에도 그랬다. 나는 간지럽다고 피했다. 피하지 말걸. 그 손의 온도를 더 여러 번 확인할 걸. 울어서 미안하다. 당신은 내가 울면 당황했지. 오늘은 당황해도 된다. 나는 그냥 남기고 있다. 사랑했다. 이 줄은 번지지 않게 천천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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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해도 된다, 진짜로

이 말을 유언처럼 무겁게 쓰지 않겠다. 당신이 나중에 누군가의 옆에 앉아도 나는 그걸 배신으로 세지 않는다. 우리는 소유 계약을 한 적이 없다. 같이 살았을 뿐이다. 다만 우리 사진을 서랍 깊숙이 숨기지는 마라. 새 사람이 불편해하면, 액자 대신 앨범 한 권이면 된다. 나도 그 사람 자리까지 탐내진 않는다. 김치찌개는 당신이 나보다 잘 끓였다. 그 실력은 다음 식탁에서도 써라. 나는 그걸 생각하면 배가 고파지지, 화가 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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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보일러 소리는 네가 알아

처음 살던 집은 방 두 개였다. 겨울마다 보일러가 한 번 쿵 하고 돌아갔다. 당신은 그 소리에 깼고, 나는 그 소리에 잠이 들었다. 취향이 그렇게 달랐다. 월세 내는 날이면 우리는 영수증을 식탁에 올려 두고 한참 말이 없었다. 그래도 다음 날 당신은 도시락 뚜껑을 잘 닫아 줬다. 말이 없는 날이 사랑이 아닌 줄 알았는데, 뚜껑이 사랑이었다. 그 집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다. 지나갈 일 있으면 보일러 실외기만 봐도 된다. 거기까지가 내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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