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ast Talk

My Last Talk

삶의 마지막에 남기고 싶은 말을 조용히 읽는 곳.

늦은봄

죽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싫다

죽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싫다 내가 사라진다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일도 여기 있는데 나만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 그 사람들의 내일에 내가 없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빈의자

내 인생 꽤 괜찮았다

내 인생 꽤 괜찮았다 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아이들도 키웠다. 친구들과 실컷 웃어봤고 바다도 많이 봤다. 돌아보니 이 정도면 꽤 잘 살았다.

밤길

솔직히 나는 죽기 싫다

솔직히 나는 죽기 싫다 다들 이제 편하게 마음을 놓으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놓고 싶지 않다. 내일 아침 햇빛도 보고 싶고, 가족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도 듣고 싶다. 오늘은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창가

잘 놀다 갑니다

잘 놀다 갑니다 여행도 많이 했고, 친구들과 밤새 웃어도 봤고, 사랑도 해봤습니다. 실수도 참 많이 했네요. 다시 살라고 해도 크게 다르게 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먼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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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형. 내가 먼저 이 말을 적는다. 엄마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엄마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알아채거든. 오늘은 그냥 피곤하다고만 해 줘. 병실 복도 자판기 커피가 너무 달다. 너는 단 거 싫잖아. 와도 그거 사지 마. 물이나 하나 가져다 주면 된다. 나는 무섭다고 크게 쓰고 싶진 않다. 다만 네가 오면 평소처럼 장난쳐. 울면 내가 더 할 말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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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결혼식은 못 보겠네

딸아. 네 결혼식 사회를 내가 보겠다고 큰소리친 게 엊그제 같다. 지금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미안하다. 변명처럼 들릴까 봐 길게는 안 쓴다. 네가 일곱 살에 운동화 끈을 혼자 묶겠다고 열 번을 풀었다. 나는 시계를 보면서 대신 묶어 버렸다. 그 손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서두르지 말걸. 결혼하든 혼자 살든, 네 신발을 네가 신는 속도면 된다. 하객들 앞에서 아버지 자랑은 빼 줘. 그냥 밥 잘 먹고 있다고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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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창밖에 가로등이 하나 깜빡인다. 병실이 조용해서 그런지, 집 보일러 켜지는 소리가 듣고 싶다. 대단한 유언은 없다. 내일 아침 죽에 소금이 없으면 말해 달라고만 하고 싶다. 오늘은 이상하게 싱거웠다. 잠이 오면 자겠다. 안 와도 창문은 이대로 둬 줘. 닫으면 더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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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통장 비밀번호보다 중요한 말

비밀번호는 수첩에 있다. 고무줄로 묶인 쪽. 그걸 먼저 찾지 마. 그건 나중에 해도 된다. 중요한 말은 이거다. 애들은 서로 계산부터 하지 마라. 내가 살아 있을 때도 명절마다 그 얘기로 밥이 식었다. 통장은 나눠도 식탁은 나누지 마. 내가 아끼던 라디오는 고장 났다. 고치려고 서랍에 부품을 넣어 뒀는데, 결국 못 고쳤다. 버려도 된다. 다만 일요일 아침에는 아무 라디오나 틀어 줘. 그 시간만은 집이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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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아빠가 미안했다

운동회 때 내가 안 왔다. 회사라고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핑계였다. 네 얼굴에 물감 묻은 사진을 나중에 보고 알았다. 잘했다고 제때 말 못 한 거, 그게 제일 미안하다. 성적은 네가 이미 알던 거고,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적는다. 너는 괜찮은 아이다. 아빠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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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보다 잘 살았다

거창한 성공은 없었다. 전세 두 번, 자가는 늦게, 차는 중고. 그걸 실패라고 부르기엔 저녁이 너무 많았다. 당신이 김치를 퍼 주면서 간 보던 얼굴, 아이가 현관에서 가방을 내던지던 소리. 그 두 개가 내 재산이다. 후회도 있다. 다만 후회가 전부를 집어삼키진 못했다. 나는 생각보다 잘 살았다. 이 문장을 남이 대신 읽어 줘도 된다. 내가 한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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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약 봉투는 냉장고 옆이야

약 먹는 시간을 내가 자꾸 까먹어서, 당신이 알람을 맞춰 줬지. 그 알람이 이제 당신 휴대폰에만 남아 있을 거다. 아침 커피는 내가 타던 게 더 진했다. 당신은 늘 물을 더 부었다. 앞으로는 당신 입맛대로 타. 내 잔은 치워도 된다. 일주일만 두고 봐도 나는 안다. 사랑한다는 말을 저녁 뉴스 중간에 해서 미안하다. 타이밍을 못 맞췄다. 내용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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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 카드값은 내가 낸 거 맞지

마지막이라고 갑자기 고상해지진 않겠다. 대학 때 네가 카드 한도 넘긴 날, 내가 편의점 김밥값을 냈다. 너는 다음 달에 쏘겠다고 했고, 그 다음 달은 아직 안 왔다. 이자까지 받진 않을게. 너는 내 허세가 무너질 때 질문을 안 했다. 그게 고마웠다. 글로 적으니까 좀 부끄럽다. 내 빈소에 검은 정장은 오지 마. 청바지도 된다. 그리고 진짜로, 카드값은 잊어라. 농담이다가 반쯤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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