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
낯선 천장이 아니라 평생 바라보던 내 방 천장을 보면서 가족들 곁에서 편안하게 잠들고 싶다.
꼭 이루고 싶은 일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
낯선 천장이 아니라 평생 바라보던 내 방 천장을 보면서 가족들 곁에서 편안하게 잠들고 싶다.
내가 떠난 다음 재산이나 지난 일 때문에 서로 등을 돌리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내 손을 잡고 앉아 있고 싶다.
아프기 전처럼 내 두 발로 일어나 가족들과 동네 한 바퀴만 걸어보고 싶다.
내 소원은 거창하지 않다.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에게 친절했으면 좋겠다. 나를 오래 기리는 동상보다, 식탁에서 눈을 맞추는 습관을 남기고 싶다. 누가 아프면 혼자 두지 말고, 누가 잘하면 아끼지 말고 말해 줘. 이것이 내가 이루지 못한 채 부탁하는 소원이다.
아버지, 어머니. 저의 마지막 소원은 두 분이 더 이상 저를 걱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여러 번의 저녁을 혼자 힘으로 먹었습니다. 서툰 저녁이었지만 굶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두 분의 무릎을 당신들을 위해 쓰세요. 사랑합니다. 이 말은 소원의 끝에 두는 것이 아니라, 소원 자체입니다.
내가 없는 뒤에도 당신은 사랑받아도 됩니다. 그 사랑을 배신처럼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나는 당신의 하루를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함께였을 뿐입니다. 그러니 새 계절이 오면 옷을 사 입고 밖으로 나가세요. 내가 좋아하던 색깔이 아니어도 됩니다.
명절에 억지로 화목한 척은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연락이 끊긴 사람을 명단에서 지우지 마라. 나의 소원은 완벽한 가족이 아니다. 서로 달라도 자리를 남겨 두는 가족이다. 다툼 끝에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다면, 나는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겠다.
너는 나의 두 번째 기회가 아니다. 네 인생으로 나의 후회를 수리하지 않아도 된다. 소원은 하나다. 네가 네 속도로 자라라는 것. 내가 못 간 길을 대신 걸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 말은 사랑처럼 보이지만 짐이다. 건강하고, 가끔은 게을러도 된다. 그게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거의 전부다.
다시 산다면 더 천천히 밥을 먹고 싶다. 더 자주 창밖을 보고, 덜 자주 내 체면을 지키고 싶다. 소원이라는 말이 거창해서, 나는 작은 쪽으로 고른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듣기. 사과를 다음 날로 미루지 않기. 그 두 가지면 다른 생도 덜 후회될 것 같다.
말하고 싶었지만 체면 때문에 삼킨 소원이 있다.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만 기억하지 마라. 다정했는지를 봐 줘.」 업적으로 포장된 추모는 외롭다. 나는 부족한 채로 사랑받고 싶었다. 그 말을 못 한 것이 남긴 부탁이다. 나를 인간으로 기억해 줘.
나에게 베푼 친절이 당신에게 도로 돌아가기를. 그것이 내가 빌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소원이다. 갚지 못한 마음들이 있다. 목록을 다 쓰지 못한다. 대신 하늘을 향해 짧게 말한다. 나는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 도움을 준 사람들의 하루가 부드럽기를.